- 2022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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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 PM 칼럼
[22년 4월 칼럼] 연구개발(R&D)과 PM
R&D 분야에 프로젝트 매니지먼트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R&D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연구(research)란 ‘반복해서(re-) 찾는다(search)’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느 바닷가 모래사장에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물론 방법은 간단합니다. 다이아몬드가 나올 때까지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를 파내면 됩니다. 즉 re-search 하면 됩니다. 그런데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일단 모래를 한주먹 파냈는데 그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팠던 모래를 그 자리에 다시 덮어야 할까요, 아니면 팠던 모래를 다른 곳으로 치워두어야 할까요? 당연히 팠던 모래를 다른 곳에 치워두고 팠던 자리는 그대로 흔적을 남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팠던 자리를 아무도 모르게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곳을 또 파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진행하다보니 자신이 팠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또 파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이전에 팠던 자리를 자기가 또 파고 있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팠던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은 것을 ‘실패’라고 부릅니다. 다이아몬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팠던 자리를 모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그 팠던 자리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다시 팔 이유가 없음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패의 자산화’입니다.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다만 만 가지 틀린 방식을 발견했을 뿐이다.”라는 에디슨의 말처럼 실패를 불성공(不成功)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 실패는 감추어질 수밖에 없고, 감추어진 실패들은 동료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도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표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지식체계 가이드(A Guide to the Project Management Body of Knowledge)에서는 이 문제를 조직 프로세스 자산(Organizational Process Assets, OPA)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OPA란 프로젝트 수행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계획서, 가이드라인, 절차서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쌓아온 노하우, 경험, 데이터베이스, 성공사례, 실패사례, 교훈(lessons learned), 이력정보(historical information) 등을 포함한 모든 지적 자산을 의미합니다.
지식정보가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아카이브(archive)되어야 합니다. 아카이브란 책들을 아무렇게나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책에 라벨을 붙여 도서관의 책장에 비치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지식정보가 아카이브 되면 다수에게 공유가 가능하고, 이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와 인프라가 갖추어질 경우 모래사장에서 다이아몬드를 더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작금에 회자되고 있는 공유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방향일 것입니다.
개발(development)은 뭔가로 덮여 가려져 있던 것(-velop)의 실체를 벗겨(de-) 그 정체를 밝힌다는 의미로서 새로운 아이디어, 제품, 시스템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디자인하고 발전시켜 만들어나간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고 구체화시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현재와 같이 기술의 복잡도(complexity)가 높고 기술 간의 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여러 전문가들의 창의력이 공유되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창출해낼 수 있습니다. 즉 개인의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창의력이 융합된 상호의존적 창의력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만약, 마이크로프로세스 전문가가 혼자서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개발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는 프로페셔널한 수준의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액정 화면이나 카메라, 배터리 등의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마추어 수준의 기술 밖에는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 전체 스마트폰은 아마추어 수준의 제품을 개발하는데 그치고 말 것입니다.
현재 많은 개발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기술에 대한 전문가들이 적절히 투입되지 못하여 최종 개발기술이나 개발품이 상용화단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분야의 주특기를 가진 전문가들의 상호의존적 창의력이 가동될 수 있는 체제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표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지식체계 가이드에서는 이 문제를 기업 환경 요소(Enterprise Environmental Factors, EFF)로 다루고 있습니다. EEF란 프로젝트를 둘러싼 조직 내외부의 환경 요소로서 프로젝트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및 조직 문화, 인프라, 자원,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시스템, 시장 여건 등을 포함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직문화입니다. 배려와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직 문화로 팀워크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조직 구조야말로 프로젝트 성공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공은 이미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팀이란 하나의 목표를 세워 공동 작업을 통하여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팀 구성원들의 차이점을 존중하고 각자의 주특기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개인들의 집합체입니다.
팀을 구성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너지 효과 때문입니다. 시너지 효과란 두 사람이 각자 따로 일을 하여 성과를 1씩 내는 경우에는 최대 2밖에 얻을 수 없지만, 함께 할 경우에 2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간의 능력의 공유가 가능해야합니다. 이 공유가 가능하려면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야하고,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려면 서로 간에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합니다. 팀 구성원들 간의 차이점을 존중하고 구성원들마다의 서로 다른 주특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상호의존적 창의력을 이끌어 낼 수 있어 팀의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제고시킬 수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기술의 발전 속도는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능력이 기껏해야 수확체감의 법칙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이는 시너지 효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시너지 효과가 클수록 그 사회의 역량은 더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간의 협업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국가와 사회의 발전 속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R&D 시스템의 신뢰, 존중, 개방, 공유, 협업의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지만, 생산성은 최고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비용에 비하여 얻는 것이 적다는 것은 우리 시스템의 퀄러티(quality)가 선진국에 비하여 낙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부R&D투자의 실효성을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지만, 그 방법을 우리 스스로 고민하여 새롭게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선진국에서 오랜 시간 고민하여 집대성해 놓은 방법론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 1941)를 시작으로 프로젝트의 개념이 태동되었으며, 그 이후 거의 8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을 해온 많은 PM(Project Management) 전문가들이 자진해서(voluntarily)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지식체계 가이드(A Guide to the Project Management Body of Knowledge)를 발전시켜 글로벌 표준으로 제시해놓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발전시켜온 글로벌 표준 PM 지식체계를 국내에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무리일지는 모르나, 그것을 우리 연구개발 생태계의 발전 과정에 접목시켜 토착화시킬 수만 있다면 선진국에서 걸린 기간보다 짧은 기간 내에 새로운 국가R&D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표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지식체계는 약 50개 수준의 프로세스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스템입니다. 각 프로세스의 입력물(input)은 그 이전의 프로세스의 출력물(output)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프로세스의 입력물로 거론되는 것이 또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OPA과 EEF가 그것입니다. 이 말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아무리 잘 구성되어 있어도 OPA과 EFF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시스템에서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합니다. 국가R&D시스템을 DOS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가, Window 수준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반석, 자갈밭, 옥토 중 어디에 씨를 뿌리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요? 반석이나 자갈밭에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어리석은 농사꾼은 없을 것입니다. 농사꾼이 제대로 수확을 얻으려면 기름진 옥토를 갈아 그 위에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R&D 토양을 옥토로 만들 수만 있다면 투입된 노력은 언젠가는 결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를 통하여 얻은 모든 경험과 결과들을 아카이브 하여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sharing)’할 수 있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collaboration)’을 통한 상호의존적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 필자 : 박석주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 기계공학 박사, PMP
- PMI한국챕터 이사(2015~2017) 및 사단법인 피엠전문가협회 활동
-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자문단 단장/자문위원 등 활동
- 현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 현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PM 강의)
- 현재) 탄소중립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