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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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 PM 칼럼
[22년 10월 칼럼] PM 이순신 리더십 재발견
1. 서론
2022년 7월 극장가를 찾아온 영화 ‘한산(주연: 박해일)’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며,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과감하게 투입되었고 우려와는 달리 영화 제작 손익분기점인 600만 관객 수를 무난히 넘김으로써 전작에 이어,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하였다. 비록 2014년 명량(주연: 최민식)의 1,700만 관객이라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700만 관객 돌파’ 기록은 펜데믹이라는 어려운 사회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열풍을 다시 한 번 일으켰다.
흔히 이순신 장군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넬슨 제독에 비교되기도 하며, 넬슨 제독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높이 솟은 첨탑 위에서 영국을 수호하듯이 이순신 장군은 오늘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서 대한민국을 묵묵히 수호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금까지의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상물과 출판물 등 세간에 알려진 바가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인 리더십과 인간적 면모에만 지나치게 관심이 집중되고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프로젝트 관리자의 관점에서 PM 이순신의 주요 해전사 사례를 재조명해 봄으로써 프로젝트 관리 측면에서의 시사점을 도출하는 한편, 프로젝트관리지식체계 지침서(PMBOK Guide, 이하 PMBOK)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시도하였다.
2. 논의를 위한 가정 및 이슈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해전사를 프로젝트 사례로 인용함에 있어서, 제기 가능한 근본적인 의문점을 먼저 짚고 나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제기되는 의문은 바다에서 벌어졌던 해상 전투를 프로젝트로 간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만일 역사상에서 벌어진 전투를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다면 체스나 장기, 바둑의 개별 게임도 프로젝트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PMBOK의 정의에 따르면, 프로젝트란 ‘고유한 제품, 서비스 또는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투입하는 노력’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프로젝트의 일시적 속성이란 프로젝트의 작업과 단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해상 전투를 보다 광의로 해석한다면 프로젝트의 시간적 제한에 충족된다고 볼 수 있으며, 결과는 전투의 승리와 실패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한 발 물러서서 해상 전투를 프로젝트로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전투의 특성상 여러 내외부 변수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만큼 프로젝트 관리의 충실한 이행만으로 결과의 성공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논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PMI로부터도 아직 명확하게 정립된 개념을 찾아보기 어렵다. 달 왕복선 프로젝트의 사례를 예로 들면, 달 왕복선 프로젝트가 무사히 완수되고 달 왕복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는 시점을 성공으로 간주할 지, 달 표면에 안착된 시점을 프로젝트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달왕복선이 달에 착륙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귀환하는 과정에서 지구 궤도 진입에 실패한 경우 프로젝트의 평가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실패한 경우로 결론을 낼 지와 같은 판단 기준 또는 시점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는 ‘4. PMBOK 관점에서 재조명’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신제품’ 또는 ‘신무기 개발 프로젝트’ – 본 고에서 프로젝트의 엄밀함을 적용한다면, ‘거북선 제작’과 ‘천자총통 같은 화포의 개량’ 등은 프로젝트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의 성공적 종료가 바로 프로젝트의 성공(이 경우는 전투의 승리)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막강한 조선 함대가 원균의 지휘 아래에서는 한순간에 전멸의 지경으로까지 내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 고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해상에서 벌어졌던 여러 해상 전투들이 프로젝트의 여건을 충족했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엄밀함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드러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PMBOK에서 제안하는 가치 기준과 관리 원칙을 이순신의 리더십과 더불어 리뷰하여 봄으로써 이에 대한 시사점을 얻고자 하였다.
3. 임진왜란 해전사 리뷰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정유재란이 일어났던 1597년에서 1598년의 기간을 통상적으로 포함) 7년간 우리 땅에서 벌어진 일본의 침략 전쟁을 말한다. 1592년 봄에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 20만은 거의 한 달 만에 당시의 수도 한양을 함락하고 이어 두 달 뒤에는 평양을 함락하는 등 조총과 같은 신무기를 앞세워 조선 국토를 유린하였다(임진왜란/이순신, 나무위키). 이처럼 임진왜란 발발 이후 별다른 저항 없이 승승장구하던 육상에서의 전투와는 달리 무엇보다 수군에 자신만만하던 일본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 해상으로의 보급로 확보에 실패하게 되고 이는 결국 전쟁의 패인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당시 남해 바다를 지키던 이가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5월 첫 출전한 옥포해전 이래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적에 대한 세밀한 정보력과 분석을 바탕으로 치밀하고도 다양한 사전 준비와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전체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해전의 승리를 이끌어 내었고 이를 통해 전 세계 해전사에서 보기 드문 전승 무패 기록을 달성하였다.
본 고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임진왜란 승전의 기록을 다시 부연 설명하는 대신 PMBOK의 관점에서 PM 이순신이 채택했으리라 가정되는 가치와 프로젝트 관리 원칙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하여 보고자 한다. 더불어 칠천량 해전(1597년)에서 원균이 이끄는 100여 척의 판옥선과 거북선, 그리고 만여 명의 조선 수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12척의 판옥선과 천여 명의 사기 저하된 수군을 회령포에서 인계받은 이순신이 어떻게 이와 같은 난국을 타개하고 명량 해전의 기적을 이루었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각주1) 20만 보다 정확한 수치는 육군 15만, 수군 1만명의 16만이라고도 하나, 백만대군이 정확히 일백만 군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수치의 엄밀함보다는 추정치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4. PMBOK 관점에서 PM 이순신 재조명
전통적 프로젝트 관리 방식과 비교하여, 애자일 방식을 대폭적으로 받아들인 PMBOK 7판의 큰 변화는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 실질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당사자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무엇인지 우선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J. 데이빗슨 프레임, 2007).
첫째,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에서는 프로젝트의 생애 주기를 단순히 개시부터 종료까지로 제한하였다는 문제 제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최종 인도물이 고객에게 전달된 이후의 영향이나 고객 만족에 대한 책임성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앞서 ‘2. 논의를 위한 가정 및 이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제품 개발이나 달 왕복선 프로젝트와 같은 사례에서 단순히 프로젝트를 주어진 일정 동안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가용 자원을 활용하여 최종 인도물을 산출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성공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게 된다.
이에 대한 해석의 예로써, 해군의 주요 지휘관과 한국 PM 학회 이사 등을 역임한 김덕수 제독은 프로젝트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임진왜란 이전을 프로젝트 착수 전 준비 단계로 구분하고 프로젝트 착수 단계를 옥포 해전에서 출발점으로 삼아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 해전까지를 프로젝트의 최종 완료 단계로 가정하였고 프로젝트의 성공을 최종적인 왜군 격퇴로 정의하였다(김덕수·남재덕, 2015). 본 고에서도 프로젝트의 성공을 판단함에 있어 이러한 기준을 따랐다.
둘째, 전통적 관리법에 따르면, 프로젝트 관리자의 역할이 지극히 한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신 일정 계획을 세울 때 간트 차트와 PERT/CPM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예산 편성 시 S곡선을 사용하는가 또는 사용할 줄 아는가의 여부가 프로젝트 수행에서 보다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즉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당사자와 이해관계자와 같은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수행 방법론과 도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을 문제점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칠천량 해전의 사례가 알려주듯이 적과의 대등한 전투력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 방안으로 PMBOK 7판에서 새롭게 변모된 측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PMBOK 7판 이전의 지침서는 프로젝트 생애주기와 10개의 지식 영역(통합, 범위, 일정, 원가, 품질, 자원, 의사소통, 리스크, 조달, 이해관계자 관리)이 직관적으로 매핑되어 프로젝트의 전체 관리 체계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조정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고 앞서 언급한 바처럼 프로젝트 관리자와 팀원의 역할이 축소되고 간과되는 경향이 많았다. 심지어 ‘팀 개발과 관리’를 자원 관리의 한 영역으로 축소하여 인지하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개정된 7판 PMBOK에서는 프로젝트관리 표준서에 가치인도 시스템과 프로젝트관리 원칙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기존의 10개 지식영역은 8개의 프로젝트 성과영역과 조정, 모델, 방법 및 가공품으로 개편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관리원칙과 성과영역에서 공히 ‘팀’과 ‘이해관계자’가 중복으로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리더십’이라는 개념 이외에 ‘스튜어드십’이란 개념이 관리 원칙에 새로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당사자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중요성이 개정판에서 보다 강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PMI, 2021).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임했던 PM 이순신의 가치체계와 관리 원칙을 PMBOK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이 임박함을 예견했던 이순신은 적의 전력과 아군의 전력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거북선을 건조하는 등 전쟁에서 현실적으로 적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가능한 영역을 사전 대비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PM 이순신이 가슴에 품었을 법한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지피지기(知彼知己) : 외부 환경에 대한 정확한 정보(일본군의 무기와 침략 규모 등)를 바탕으로 나와 적의 강점과 약점 분석 및 대응책 수립
– 내외부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조정 및 대응
– 신상필벌(信賞必罰)의 공정한 내부 규율 정립
–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리더십 실천
이상의 가치체계 아래 PM 이순신이 PMBOK에서 제시하는 관리 원칙을 어떻게 완수하였는지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1 성실하고 존경할 만하며 배려심 있는 관리자 되기
프로젝트 관리자(PM)로서 이순신에게 주어진 책임은 단순히 믿고 따를 만한 리더가 되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100년 이상의 내전으로 전쟁이라면 이골이 난 해적 집단 같은 일본군 20만이 국토의 대부분을 종횡무진 유린하고 있었고 조총과 같은 신무기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조선을 바라보는 당시 수군들의 두려움은 참으로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순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이러한 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부하들을 해방하는 것이었고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한편, 아무런 외부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해야 했으며, 열악한 상황으로부터 어찌되었든 남해 해상을 지켜 내야 했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모든 일들을 충실하고도 완벽하게 수행하였다.
4.2 시스템 상호 작용에 대한 인식, 평가 및 대응
이순신이 해전에서 주로 활용한 전술은 총통과 같은 화포를 이용한 집중 발포, 그리고 거북선을 이용한 돌격전과 당시 조선 전함의 특성을 백분 활용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전함인 판옥선은 소나무로 건조되어 견고하였던 반면, 일본 전함은 삼나무 판자로 만들어져 전투용이라기보다는 주로 많은 인원을 이동시키려는 수송 목적이 컸다고 한다(윤영수, 2005). 외형 면에서 볼 때도 일본 배의 밑바닥은 끝이 뾰족한 첨저형이어서 정면으로 나아갈 때는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었으나 방향 전환이 어렵고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좌초 우려가 높았던 반면, 판옥선은 밑이 평평한 평저선이어서 방향 전환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운항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거북선의 외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왜군의 조총과 백병전의 피해를 막는 동시에 튼튼한 외형을 통해 적극적 공세의 이점을 얻고자 고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한산 해전(1592년 7월)에서 학익진(鶴翼陣)을 과감히 펼쳐 적선 60여 척을 섬멸하고 많은 왜군을 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잘 훈련된 수군과 더불어 판옥선과 거북선의 장점을 백분 활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시스템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 평가와 대응에서 장군이 보여준 또 다른 뛰어난 능력은 적 또한 실패와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사실을 늘 고려하였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은 적이 미처 예상하지 못하는 허점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다양한 기습 공격과 국지전, 그리고 한산과 명량 해전에서 보여준 과감한 전면전 등 상황에 맞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 반면,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과거 이순신 장군이 구사했던 기습 전략에 역으로 휘말려 조선 수군 전멸이라는 초유의 재앙을 초래하였다.
각주2) 학익진(鶴翼陣): 대형을 학의 날개처럼 넓게 펼쳐 그 안에 적이 들어오도록 유인하여 포위하는 진법으로 주로 육전에서 사용되는 전술을 해전에 최초로 응용한 사례로 높이 평가받고 있음(윤영수, 2005)
4.3 리더십 행동 보여주기
임진왜란 당시 리더로서 이순신 장군이 가장 고심하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1592년 4월 일본을 건너온 20만 왜군이 조총을 앞세워 국토의 대부분을 순식간에 짓밟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겪었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적군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가장 큰 장군의 근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의 선택은 척후선을 띄워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피고 적과의 전면전은 가급적 피하면서 적의 약점을 파악하는데 집중하되 기습전과 같은 작은 전투를 통해 승리의 자신감을 부하들이 반복적으로 고취하도록 격려하는 일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산 해전과 연이은 부산포 해전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었고 남해 제해권을 지켜 낼 수 있었다. 그는 크고 작은 모든 전투에서 부하들을 격려하는 솔선수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였고 부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히 살핌으로써 상벌을 엄하고도 공정하게 시행하는 모범을 보였다 (노승석, 2014).
4.4 상황에 따른 조정 (명량해전 사례)
1597년은 분명 이순신 장군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한 해였을 것이며, 이를 통해 이 땅에 진정한 성웅(聖雄)이 탄생하게 된다. 억울한 옥살이와 백의종군, 그리고 아들의 옥살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시던 어머니의 선상에서의 죽음과 상도 치르지 못한 채 다시 전쟁터로 떠나야 했던 장군의 애통함, 그에 더하여 사랑하는 막내 아들의 전사와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인한 조선 수군의 전멸 소식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시련을 딛고 장군은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천리 길을 재촉하였다. 그는 수군 재건을 위해 합천 초계로부터 회룡포에 이르는 천리 길을 걸으며 군대를 모았다. 그에게 주어진 자원은 12척의 판옥선과 패배감과 절망감에 빠진 수군 패잔병들이었다. 이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적선 130여 척이 어란진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급보가 전해졌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대면하여 이순신 장군이 선택한 전략은 가위(可謂) 천재적이었다. 장군은 싸움의 장소로 ‘명량’을 선택했다. 명량 해협은 해남과 진도 사이에 위치한 좁은 물길로 폭이 매우 좁고 빠른 물살로 인하여 멀리서도 소용돌이치는 물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명량’ 또는 ‘울돌목’이라 불린 곳이다. 또한 6시간마다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장군은 이곳을 전투 장소로 선택함으로써, 오자병법 여사(勵士) 편에서 이른 ‘목숨을 각오한 한 사람이 길을 막아서면 능히 천 명을 막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실행에 옮겼다.
당시 전투 가능한 전함은 13척의 판옥선이 전부였다. 그는 인근의 어선 100여 척에도 출동 명령을 내렸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얻기 위함이었는데 어선을 전투선으로 위장하여 보임으로써 적에게 아군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 하나요, 다른 이유는 어선을 배수진으로 삼아 아군의 퇴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출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즉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말로 부하들에게 당부하였지만 패배 의식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수군들이 쉽게 장군의 말에 호응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대장선이 적함들에 둘러싸여 근 2시간을 고군분투(孤軍奮鬪)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판옥선은 모두 뒤에 멀찍이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장군의 정확한 예측처럼 조류의 방향이 급격히 바뀌면서 다른 배들도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 전투에 합류하게 된다. 이로써 전세는 역전되고 적함은 집중 포화에 부서지고 서로 뒤엉켜 급기야 적장의 시신까지 노획하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명량해전은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바탕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되고 연출된 이순신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전승으로 기록되고 있다.
5. 결론
미국 야전 사령관을 지낸 조지 패튼 장군은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맞추려 하지 말라. 상황에 가장 맞는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하라”고 했다(윤영수, 2005). 현실적으로 프로젝트 관리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점 중 하나는 프로세스와 도구에 기반하여 프로젝트 관리를 수행할 경우 변화에 따른 신속한 대응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을 들 수 있다. 현실적으로 위기로부터 프로젝트를 구하는 경우는 프로젝트 관리자의 리더십과 팀원들의 끈끈한 결속력이 성패를 결정짓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진왜란 당시 외부적으로는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의 침략 세력에 대항하여 조국의 사활과 남해 제해권 사수를 걸고 싸우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자신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왕과 현실 감각 없는 중앙 관료들, 그리고 중상모략을 일삼는 내부의 적들, 패배감과 두려움에 빠진 조선의 수군과 피난민들에 이르기까지 항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려운 선택에 내몰렸던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하루 앞을 예견하기 어려운 시대에도 좋은 리더십의 귀감이 되고 있다. PM 이순신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실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과감한 실행력,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판단을 믿고 주변에도 강한 신뢰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영원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2023년 개봉 예정인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마지막이 될 ‘노량: 죽음의 바다(주연: 김윤석)’가 또다시 이 땅에 이순신의 열풍을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김덕수·남재덕, 2015] 김덕수·남재덕, 이순신의 해전을 통해 본 프로젝트 성공 법칙(조선의 프로젝트 리더, 이순신의 멘터링 교과서),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No.12, 행복한 미래, 2015(개정판)
[노승석, 2014] 노승석, 이순신의 리더십 – 고금에 통하는 혜안으로 세상을 읽다 -, 여해고전연구소, 2014
[윤영수, 2005] 윤영수, 불패의 리더 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웅진씽크빅, 2005
[이순신, 나무위키] 이순신, 나무위키, 2022.9.29. 접속, https://namu.wiki/w/이순신
[임진왜란, 나무위키] 임진왜란, 나무위키, 2022.9.29. 접속, https://namu.wiki/w/임진왜란
[PMBOK, 2021] 프로젝트관리지식체계 지침서 및 프로젝트관리 표준서(PMBOK GUIDE) 제7판, PMI, 2021
[J. 데이빗슨 프레임, 2007] J. 데이빗슨 프레임, 이석주/신영환(옮김), 프로젝트 관리의 해법, ㈜한언, 2007
필자 : 이 준
• PMP, Ph.D.(컴퓨터공학), 기술거래사, 기업기술가치평가사
• 현) PMI 한국챕터 교육위원회 위원
• 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정책연구실장/책임연구원
• 관심분야 : 프로젝트관리, 애자일, 데이터 정책 및 거버넌스 등